현대 발레의 거장 조지 발란신은 뉴욕 유명 보석상 '반 클리프 앤 아펠'을 방문했다가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보석에 눈길이 갑니다. 영롱한 자태에 감탄하면서도 문득 안무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주얼스'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발레 '주얼스'는 조지 발란신의 유일한 네오클래식 작픔으로, 직접적인 스토리 전개나 인물의 감정변화가 주된 내용이 아닌 무용으로써의 순수한 움직임 그 자체를 중요시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스토리가 없으며 주인공의 이름도 없지만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이 세가지 보석에서 느낀 순간적인 모티브를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표현했습니다. 발란신은 각기 다른 춤, 의상, 음악, 그리고 분위기를 다르게 표현해 3막의 작품으로 엮었습니다.
녹색 에메랄드
1막인 에메랄드에서는 프랑스의 위대한 서정적인 로맨티스트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음악을 사용했습니다.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샤일록'이 흐르는 가운데 우아함과 안락함, 드레스,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프랑스 낭만주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의상 또한 로맨틱한 프랑스 에메랄드를 표현하기 위해 녹색 로맨틱 튜튜를 입고 부드러운 폴드브라와 섬세한 스텝을 선보이며 군무, 남성 솔로, 여성 솔로, 3인무, 2인무 등으로 마치 공기 중에 부유하듯 부드럽고 가볍게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붉은 루비
3개의 막 중 가장 활기찬 무대를 보여주는 2막 루비는 붉은 모더니즘적인 미국 도시를 배경으로 표현했습니다. 발란신에게는 아메리칸 발레학교와 뉴욕시티 발레단을 설립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틀린 음표의 바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기상곡'과 함께 재즈풍의 발레를 표현합니다. 경쾌하고 재치 있는 움직임이 돋보이며 남녀 무용수 할 것 없이 재기발랄한 안무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1막과 달리 모더니즘적인 플랫 스커트를 입은 무용수들이 미국 발레 스타일 특유의 자유로움과 위트를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특히나 기교적인 안무와 스텝이 돋보이고 난이도 높은 테크닉들을 소화해내며 끊임없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는 무용수들을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와중에도 다양한 표정연기와 표현으로 뮤지컬과 같은 연출을 선사합니다.
다이아몬드
3막은 조지 발란신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이자 마린스키 발레단 활동을 했던 러시아 황실 발레를 표현했습니다. 러시아 클래식의 거장이자 발레곡의 대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3번과 어우러져 발레의 우아함과 황실의 위엄을 상기시킵니다. 한 겨울 순백의 순수함을 표현하는 듯한 무대는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압도적인 인상과 깊은 여운을 남겨주기도 합니다. 클래식한 러시아 다이아몬드 답게 순백색의 클래식 튜튜를 입은 발레리나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가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무대를 수놓습니다. 코르 드 발레 군무진과 드미 솔리스트들은 중간 길이의 튜튜를 입고 솔로 발레리나가 짧은 튜튜와 함께 큰 티아라를 착용하며, 남자 무용수들이 무대 위 17쌍의 커플들과 함께 여자 무용수들에 합류하는 막 후반부에서는 여자 무용수들은 피날레 춤을 추기 위해 긴 장갑을 착용하는데, 이 장갑은 황실 발레에 걸맞은 격식과 웅장함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3가지 보석을 표현하는 음악과 안무
조지 발란신은 각 발레가 상징하는 보석의 정수를 나타낼 수 있는 작곡가를 선택하여 3막 3가지 보석을 더욱 완벽하게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안무 또한 보석들이 나타내는 아름다운 빛깔에서 영감을 받아 각 보석만의 특징을 살려 안무하였습니다. 연극, 오페라, 그리고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문학과 어울리는 음악들을 작곡한 가브리엘 포레의 에메랄드는 로맨틱한 안무 스타일과 어우러져 낭만 발레의 정수를 느낄 수 있으며, 스트라빈스키의 현대적인 음악은 미국 스타일의 루비 안무와 완벽하게 결합되며 매우 활기차고 위트 넘치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웅장하고 화려한 차이콥스키의 선율과 고전적이고 풍성한 안무와 의상,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클래식 발레 그 자체를 표현하기에 충분합니다.